Bicycle-World-Tour Book
Tour: Germany - Korea

Titel: Gohmug Namu-Oah
          Gämi-Uih
          (big tree and
          small ant)

Author: Mun Suk Wehrheim

Language: korean

out of stock

독일 함부르크에서 -한국강릉까지
(출발1998 721  도착1999 1031)

달린 km : 13.500 km

여행국:
독일, 체코, 오스트리아, 이태리, 그리스, 이스라엘, 이집트,
케냐, 인도, 태국, 말라이지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필리핀, 한국
Email
농담이 진담으로 실현되다.

독일에서 자전거로 출발 신체적으로 사전 준비는 전혀 없이 엘베강을 달리면서 육체를 단련 시켰다. 무모한 도전이였음을 3일만에 깨달았다.
동독의 사람들의 표정과 너무나 많은 때문에 쓰러진 자전거를 일으킬수가 없었기에..
<div align='center'><img src='image/Tour01_001.jpg' alt='Tour01_001'></div>
독일의 엘베강을 달리면서 체력을 단련하자

여행 전에 7일간의 유예기간을 두기로 것은 잘한 같다. 동독을 벗어나서 체코로 오니 독일과는 전혀 다른 흥미로운 것도 많고 여행의 묘미를 느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알프스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div align='center'><img src='image/Tour01_002.jpg' alt='Tour01_002'></div>
오스트리아, 알프스


이태리
눈물의  상봉
우리들의 목적지는 Siena이다. 도로에서 주의 사항은 표지가 독일과 달리 국도 표시는 파란색 고속도로 표지는 녹색 이어서 색깔만 구분하면 되겠구나 싶었다. Florenz에서 떠날 때부터 Siena 표지는 아주 선명하게 있고 길도 그리 까다롭지 않다고 하여 걱정을 하지 않았다. 에릭은 보통 다른 날과 같이 앞에서 달렸고 나는 천천히 이것저것 살피며 뒤에서 달렸다. 다리를 지나기 직전 파란색으로 방향이 직진이 표시되어 있고 40Km남았다고 쓰여 있었다. 그런데 다리를 지나고 나니 오른쪽으로 가라는 표지와 거리수도 갑자기 늘어나 60Km 변하여 있었다. 내가 잘못 보았었나. 분명히 직진으로 크게 쓰여 있었는데, 하면서 의문이 가기는 했지만 다리를 지난 표시는 너무나 크고 분명히 파란색으로 되어 있었다.. 직진의 길을 보니 조그마한 마을로 가는 같고 오른쪽 길을 보니 국도 마냥 넓은 길이고  의문은 갔지만 오른쪽 길을 선택했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녹색의 표시로 되어 있고 조금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가도 가도 에릭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내가 착각을 하고 고속도로로 접어들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있긴 했지만 뒤에 오는 자동차들도 아무도 잘못 간다고 크랙션을 울려대지 않고 심지어 경찰차도 지나가면서 아무 반응이 없었다. 나는 그가 조금이라도 기다리지 않고 너무나 멀리 것이 마냥 밉기만 해서 만나기만 해봐라 하고 씩씩거리며 달렸다. 그런데 , 멀리 보이는 것이 터널이었다. 터널을 지날 때면 너무나 위험하고 이상한 공포증 같은 것도 있고 하여 그와 나는 거의 간격을 좁혀서 함께 달리는데 그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그때 잠깐 내가 길을 잘못들 지는 않았을까 싶으면서도 터널을 달리고 그가 기다리다 지쳐서 먼저 지나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할까 망설이는데 봉고차가 섰다. 이태리 말로 무어라고 하는데 나는 마디도 알아들을 없었고 나는 이길 Siena 가는 길이냐고 물으니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가 기다리다가 정말로 혼자 모양이네 괘씸하기 짝이 없군 만나기만 해봐라 다시 쥐포로 만들어 버릴 테니.. 이태리인은 방향이 같으니 차에 타라고 하는 것이었다. 차를 타고 터널을 건널까, 아니면 자전거를 혼자 타고 가서 나도 있다는 용기를 보여줄까 하며 생각을 하다 "아니야, 무엇인가 잘못 같아 그가 분명히 나를 기다릴 텐데 내가 길을 잘못 들은 건지도 모르니 사람에게 고속도로인지 아니면 가는 길이 여러 가지인지 물어 보아야겠다고 생각해서 말이 통하지 않아 그림으로 그리며 설명을 하고 Highway 나고 물으니 그렇다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내가 다리를 지나 직진을 해야 되는데 잘못 들어왔구나 싶었고 다시 돌아 길을 찾았다. 마음은 벌써 불안하고 어떻게 해야 되나 싶어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그렇게 판단을 하고 보니 차들이 의외로 너무 빨리 달리는 같고 길을 따라 때는 그의 뒷모습만 쫓느라 도로 중간에 칸막이가 설치되어 있는 것도 보이지 않았었는데 고속도로 진입의 모습 이었다. 길을 거꾸로 돌아갈 것인가 도로 반대편으로 건너가 것인가 길을 되돌아가는 것이 다시 그를 만나기에는 쉬운 방법이지만 길은 비상도로도 없고 내가 반대로 달린다면 차들이 빵빵대고 자살'행위로 판단이 섰다. 그렇다면 건너서 가야 되는데 도로 중간을 어떻게 건너지 .. 침착 하자, 하며 스스로 외치며 자전거를 세워두고 건너 있는 길이 있는가 살펴보았다. 단지 지금 너에게는 침착히 필요하니 진정하고 가는 거야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달렸다. 조금 가니 빠지는 길이 보였다. 길로 내려오니 다리를 지나기 전의 길이였다. 이젠 제대로 왔구나 싶고 그를 만나게 되겠구나 싶어 열심히 다리를 지났다. 표지를 보니 직진 표시였다. 정말로 내가 착각을 해도 단단히 모양이네.. 그리고 다리를 지나면 그가 있으리라고 생각하며 그를 부르며 갔다, 그런데 그의 모습은 모이지 않았다. 장난치지 말고 빨리 나와. 글쎄 내가 고속도로를 혼자 달렸지 뭐야. 이제부터는 빨리 달려 속력을 맞출 테니까 .나오라고 했지만 그는 나타나질 않았다. 숨어서 기다리고 있을 알았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지며 이젠 정말로 그를 잃어 버렸구나 싶고 하여 자전거는 팽개치고 거의 반정신이 나간 여자 마냥 길을 왔다갔다하며 그를 불렀다. 그는 없었다. 그러한 나의 모습을 보고 자동차가 서더니 나에게 다가오며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어왔다. 남편을 잃어 버렸다며. 그는 나의 영어를 이해를 하는지 지나가는 자동차를 세우며 영어를 있는 사람을 세웠다. 울면서 여기서 길이 알쏭달쏭하여 길을 잘못 들어 고속도로를 탔고 , 그것을 알고 돌아와 처음에 약속했던, 길을 잘못 들거나 하면  장소에서 기다리기로 그의 모습이 없다며 설명을 했다. 나를 발견한 사람은 그를 찾으러 갔고 영어를 하는 사람은 나의 흥분을 진정 시키기 위하여 물도 주고 본인도 한번 길을 잘못 들어 엉뚱한 데로 갔다며 이태리 표지판이 조금 이상하게 되어있다며 미안하다는 것이었다. 눈물을 그만 흘리고 남편을 찾을 있으니 걱정 말라며... 내가 흥분을 진정할 있도록 사람은 어떻게 행동을 해야 될지 안절부절못하며 계속 울지 말라며 너무 울면 남편도 보기 힘들 정도로 맥이 빠진다며, 처음 보는 사람 앞이라 창피하고 그런 느낌 같은 것은 들지 않았다. 단지 눈물만 흐르고 그를 잃어버리게 되면 어떻게 하는가 하는 두려움으로 몸은 떨리고... 시간은 나에게 초조와 불안뿐 이였고 제발 그가 돌아 오기만을 기다렸다. "돼지야" 들리는 그의 목소리. 그가 나에게로 오고 있었다. 그와 나는 얼싸안고 눈물이 범벅이 되어 서로를 찾게 것에 기뻐했다. 상황 설명을 들어보니 그는 내가 당연히 다리를 지나고 표지판이 잘못되어 있는걸 알고 직진을 했으리라 생각했고 아무리 기다려도 내가 오지 않기에 이상하다 싶어 다시 다리 쪽으로 내려가 보고 그래도 내가 보이지 않아 그는 다음 마을의 경찰서도 향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아마 우리는 아주 공교롭게 서로를 지나쳤던 모양이다. 우리는 그날 서로의 소중함을 더더욱 절실하게 느꼈고 사랑을 확인했다. 지금도 순간만 생각하면 아찔한 가슴 아픈 경험 이였다.
<div align='center'><img src='image/Tour01_003.jpg' alt='Tour01_003'></div>
이태리,우리들의 신혼여행지였던 베니스


그리스
 가보고 싶었던 곳이고 기대가 많은 곳이라 실망이 조금 컸다.(아테네) 그리고 차량들이 너무 과속을 하여 자전거 여행하는데 조금 위험 하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었다하지만 환상의 토리니 , 히드라 섬의 고양이와 자전거와의 작별, 올리브.

경찰서 앞의 불쌍한 자전거
섬에는 교통 수단이 들어 없단다. 자전거를 배에 싣고 섬에 들어가는 것은 불법이란다. 배에 탑승한 관광객은 우리 때문에 떠나지도 못하고 우리는 졸지에 원숭이가 되어 버렸다.
 되는 일이 어디 있어!!! 장님에게 도와 달라며 애원을 했다. 티켓 때도 아무 언급이 없었고 경로를 택하지 않으면 오던 길을 다시 돌아가야 되고 기타 등등 우리들의 불편 사항을 호소했다. 장님은 자전거를 싣고 가게 되면 불법인 터라 다시는 배를 운항하기 힘들지도 모른다며. 자전거를 toro 항에 두던가, 아니면 배에 두고 섬을 보라는 것이었다. 자전거는 우리의 생명과 같았다. 한번도 자전거를 바깥에 외진 곳에 놓아둔 적도 없고 그러한 결정에 따를 수는 없었다. 어떻게 도와주라며 다른 여행객들도 덩달아 부축이고 장님은 머리를 갸우뚱하시더니만 조금 기다리라며 다시 들어가셨다. 그와 나는 30분내에 결정이 나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길을 되돌아가는 번거로움과 시간의 낭비는 있지만 티켓을 곳으로 가서 따지고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시간이 조금 지났을까 장님이 나오시면서 약간의 미소를 띄고 나오셔서 좋은 일이구나 하고 추측은 있었다. 히드라 섬에 도착하면 경찰이  나와 있을 거고 우리는 자전거를 타서도 안되며 경관과 함께 자전거를 경찰서에 두어야지 자전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번거로움보다는 자전거를 며칠 안타는 것이 효과적일 같아 그렇게 하겠노라고 약속을 했다. 환호성과 함께 우리들이 배는 아름다운 그리스바다를 가기 시작했다. 배가 섬에 도착하자마자 부두에는 숙소를 알선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고 다른 여행객들은 그들에게 끌려 하나 둘씩 떠났지만 우리는 죄도 짓지 않았는데 범죄자 마냥 우리는 경찰을 따라가야만 했다. 섬은 그리스 정부가 일부러 특이하게 관광객 유치를 하기 위하여, 공해 없는 , 교통 수단이라고는 튼튼한 인간의 두발과 나귀로 정했다고 한다. 그리고 섬의 모습을 파악하니 도저히 자전거로 다닐 수가없었고 자동차는 더더욱 불가능했다. 섬의 집들은 기슭에 옹이종기 ,다닥다닥 붙어있고 골목들은 모두 좁고 그리고 돌로 길이 형성되어 있었다. 경찰서도 아주 계단이 많은 기슭에 위치하고 있었다. 우리는 차근차근 짐을 풀고 그는 자전거를 계단으로 들고 올라갔다.
왠지  모습을 보는 순간 슬픈 생각이 들었다 .생명이 없는 자전거이지만 지금껏 경찰서 출입을 할만큼 교통 법규를 어긴 것도 아니고 우리들의 자식 같았는데 말이다. 자전을 경찰서에 두고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고 당연히 사람들이 나의 슬픈 마음을 이해하진 못했다. 아침저녁 번이고 경찰서를 갔다. 쓸쓸하게 세워져 있는 자전거가 어찌나 가슴이 아프던지.


이스라엘
수영을 하지 못해도 바다에서 뜬다. 사해의 경험, 한밤중의 응급실 방문, 친절한 이스라엘 젊은이들과 이들의 사고 방식을 경험 있는 좋은 여행. 40도의 무더위에 자전거로 달리고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무지 힘들지만 기억에 많이 남는 곳임.

수영을 못해도 물에서 있다니
예루살렘을 떠난다는 것이 너무나 아쉬웠지만 우리는 사해를 향해 떠나기로 했다. 날씨는 숨막히는 했고 다행히도 계속 내리막의 연속이었다 사막과 같은 곳을 계속 내려오면서 눈에 간간하게 뜨이는 것은 낙타랑 빈민굴 같은 것이었다. 사람들이 사는 모습은 전혀 찾아 수가 없었고 사막에 차량도 거의 없어 우리 둘만 덩그러니 있는 듯한 이상한 기분이었다. 드디어 사해 Sea Level 이라고 쓰여있는 곳까지 왔고 정말로 믿어지지 않았다. 내가 현실 속의 나인지 그림 속의 나인지..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자연의 모습은 쓸쓸한 듯하며 신비스러움.. 내가 이런 것을 직접 나의 눈으로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황홀 자체였다.
역시 이스라엘은 신비의 나라이다.
En Gedi 드디어 도착 . 사해 옆에서 있다는 캠핑 장으로 갔다. 캠핑은 문이 닫혀 있었다. 주유소에 물으니 수질이 좋지 않아서 문을 닫았다며 사해를 보러 오는 관광객을 위해 만든 휴식공간에  아무 곳이고 텐트를 치면 되고 화장실과 샤워 실은 돈을 내고 사용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텐트를 치고 있었다. 우리도 자리를 잡고 텐트를 쳤다. 수영을 하지 않아도 물위에 뜬다는 사해. 모든 것이 둥둥 뜬다는 ..
그는 당장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들어가더니 나에게 겁먹지 말고 들어오라며 정말로 ,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수영을 하는데 뒤로 뜨고 있었다. 나도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앞에서 뜨는지 시험을 했더니 저절로 발이 올라가며 뜨는 것이었다. 너무나 신기하고 기뻐서 나는 소리를 지르고 좋아했다.
그는 조금 속까지 들어오라며 깊은 곳에서도 뜨고 물이 입이나 눈에 들어가면 위험하니 그것만 주의하면 된다며 나를 깊숙한 곳까지 데리고 들어갔다. 거기서도 나는 뜨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속에서 걸을 있으니 그것도 해보라며...
 너무나 행복했다. 수영을 못해도 이렇게 누울 수도 있고 바다를 걸을 수도 있고 정말로 TV에서 보던 바다 위에서 의자도 뜨고 신문도 읽을 있으니...
세상에 이런 곳이 존재하다니.. 다만 사해가 어떻게 형성이 되었는지 그가 설명을 해주어도 이해가 안가고 나의 무지가 마냥 속상할 뿐이다.
해가 지는 사해의 모습은 너무나 황홀하고 아름답기만 했다..
<div align='center'><img src='image/Tour01_004.jpg' alt='Tour01_004'></div>
사해


이집트
그리스와 같이 많은 기대를 하고 가서 많은 실망을 . 처음부터 장이 좋지 않더니만 여행 끝까지 고생. 현이집트인들이 유적지를 보존하지 못하고 관광객을 대상으로 장사만 하려고 하는 모습에 질림. 자전거 타는 것도 동냥이 너무 잦아서 짜증남. 하지만 완전히 색다른 세계라 흥미 진진
<div align='center'><img src='image/Tour01_005.jpg' alt='Tour01_005'></div>
나일강으로 가는길

이게 바로 신선이구나...
펠루카는 이집트 특유의 배로 4-5m높이의 돛단배이며 나일강을 터전으로 하고 있는 이집트인의 생활 필수품을 나르던 목적으로 사용되며 관광객이 많은 시기에는 나일강을 오르내리는 신성의 배로 이용되었다대부분 인원은 7명이며 안에서 먹고 자고 하며 이틀간 그렇게 Luxor 간다. 밤에는 캠프파이어도 하고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고 마시고 놀고.... 우리랑 함께 인원은 2명뿐이었다. 다른 유럽 사람들이 많이 오길 바랬건만 일본 남자아이들 이었다. 인원도 적고 너무 어린 아이들인 같아 없지 않아 실망스럽긴 했지만 다른 배를 보니 7명이 차서 자리 때문에 난리였다.펠루카를 선장이 직접 손으로 노를 저어서 몰고 선장이 음식을 때는 우리가 선장이 시키는 데로 노를 젓고, 처음 저어보는 노라 재미있고 , 때는 쉽게 보이는데 막상 해보니 매는 자꾸 다른 방향으로 가고 다들 재미있게 가족처럼 보냈다. 음식을 나는 선장을 도와주면서 요리하는 것도 배웠다.이집트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먹는 음식이고 보편화된 것이라며 쌀의 반을 기름에 볶은 조그마한 국수도 볶고 나머지 생쌀을 집어넣고 한참 끓게 놔두니까 밥과 국수가 되고 각종 야채를 넣고 볶은 토마토 소스를 넣고 한참 끓여 찌개처럼 하여 그렇게 2가지만 하여 밥을 먹는데도 같았다. 하루 종일 하는 것도 없는데 뱃속에 거지가 들어가 있는지...
 먹고 쉬고 마시고, 자고 , 카드놀이하고, 읽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하면서 강을 따라 파괴되지 않은 나일강의 모습도 보며 마음속의 여유도 찾고..
신선이라고는  느꼈지만 다른 방식의 휴식의 형태이라서 새로웠다. 하지만 우리 같은 관광객들이 밤에 캠프를 하고 화장실로 이용했던 나일강의 주위는 온통 쓰레기더미와 밭이라고 표현을 해도 모자라지 않을 만큼 파괴되고 더러워져 있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신선이 되어서 즐기려면 만큼 자연도 보호하고 가꿀 알아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이 많이 따르고 반성을 하게 새로운 계기였다.
어느 나라이고 관광지에 가면 바가지를 뒤집어쓰고 사기를 당한 느낌은 다들 갖게 마련이겠지만. 펠루카를 타기 전에 분명히 Luxor까지 데려다 준다고 서는 놓고 근처에 내려 주며 물결이 세어서 반나절을 가야 되며 본인들은 23일로 tour 하였다는 것이었다.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펠루카들도 듯이 그곳에 세워두고 차를 이미 불러 놓았으니 그걸 타고 가면 되며 요금은 다며 ,그렇게 하던가 아니면 펠루카를 타고 사람은 요금을 내던가 양자택일을 하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너무 화가 나서 일본아이들에게 우리끼리 내려 마을로 들어가 택시를 잡아타던가 그러자고 하였다. 아이는 동의했고 선장에게 그렇게 얘기했다. 이틀동안 선장이 베풀러준 친절도 하나의 짜여진 극본 같고 실망스러웠다. 선장과 택시 운전사는 우리를 함께 데리고 가야지만 차가 차고 이윤이 남는 다고 생각을 해서인지 가격이 타냐며 마을로 나가는 길도 험하고 나가 보았자 택시도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때문이 아니었다. 사람을 공교롭게 그런 상황으로 만들어서 준비된 차를 이용하게 하고 이중의 장사를 하는 방법이 너무나 우리를 기만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편 정말로 마을로 갔는데 교통편이 없으면 어떻게 하고, 마을이 멀면 어떻게 하나 싶어 걱정이 되어 그에게 사기를 당하는 느낌이라도 함께 타고 가자고 하니 그는 죽어도 그렇게는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랑 생사고락을 함께 하겠다는 일본 아이들은 운전사가 교통수단 찾기 어렵다는 말이 끝나자 마자 우리에게는 의사도 물어보지 않고 자기들도 준비된 차를 타겠다는 것이었다. 완전한 배신 이였다. 그렇게 배에서 친하게 지내고 나도 누나처럼 끼니때마다 챙겨주고 먹을 것도 나누어주고 힘들어도 자기들한테 편하게 대해주고 하였건만, 이것은 그들이 바라지 않았던 나의 호의일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10여분을 걸었다. 사람들이 사는 모습이 보였고 우리를 보자 아이들도 뛰어 나오고 구경꾼들로 몰려들었다. 지저분하고 찢어진 옷에 여자들은 머리를 감지 않아 기름이 덖지 딱지 끼어 있고 정말로 모습은 이루 말할 없이 지저분했다. 하지만 호기심에 그들의 얼굴, 특히 아이들의 순진한 얼굴 .. 말이 통하니까 손과 발로 얘기하고 우리 목적지를 대고 자동차를 땅에 그리니 기다리라는 표시를 주었다. 우리 크기 때문인지 손으로 크고 작다는 표현을 하며 자기들끼리 웃고 , 어떤 사람은 덥다고 물을 마시라고 갔다 주는데 그걸 마셔 배탈이라도 날까 걱정도 되고 하여 그렇게 거절하는 것이 너무 미안했다. 그들이 베푸는 호의를 무시하는 같아서, 하지만 들은 이야기고 많고 ( 안에 나쁜 것을 집어넣어 여행자인 털거나 한다는 ), 그러한 나쁜 일을 하리라고는 생각이 안되었지만 위생시설 때문에 그물을 먹고 설사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거절 수밖에 없었다. 분명히 많은 관광객들이 갖는 고민일 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의를 거절하기는 미안하고 그렇다고 약간은 미심쩍은데 받아들이기도 뭐하고.. 소수의 나쁜 사람들 때문에 순진하고 착한 사람들도 그런 눈으로 보게 되는 것이 미안했다. 조금 기다리니 조그마한 픽업이 왔고 우리는 탔다. 가면서 사람들을 태우고 내리고 하는 마을 버스  같은 픽업을 이용하였고 차에 타는 사람들은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불편을 주지 않기 위하여 본인들은 아주 다닥다닥 붙어 앉으면서 우리에게는 편안하게 앉으라며 호의를 베푸는 것이었다.준비된 차를 타고 갔더라면 조금은 편안하게 목적지에 도착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삶을 직접 체험했다. 관광객이 찾는 그런 도시만이 아닌 마을 사람들의 사는 모습도 보고 그들의 아름다운 마음씨를 알게 되었다.
<div align='center'><img src='image/Tour01_006.jpg' alt='Tour01_006'></div>
이집트의 자전거숍


케냐
동물의 천국, 기린과 누가 빨리 달리래! 하고 내기도 하고  자연환경 만점.
도로 사정은 정말로 좋지 않지만 동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만점인 나라.
태어나서 처음으로 70명이 넘는 바분 원숭이와 캠핑을 동물 왕국.
<div align='center'><img src='image/Tour01_007.jpg' alt='Tour01_007'></div>
마사이들과 함께

원숭이 (baboon) 함께
National Park 들어가려면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사파리 투어를 한다. 이미 다른 park에서 자전거로 다닐 있고 직접 눈으로 얼룩말과 기린 그리고 돼지 같이 생긴 동물도 보고하여  동물에 대한 나의 겁은 조금씩 사라지고 우아하고 웅장하고 거대한 자태에 반해서 어려운 길을 무릅쓰고 왔다. 입구에서는 자전거가 출입금지 이고 입장료도 비쌌다. 외국인과 내국인의 가격이 틀렸으며 자동차를 가지고 들어가야 된다는 것이었다. 많은 야생 동물들이 습격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험이 뒤따르기 때문에 걸어서도 안되며 차를 타고 들어가야 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자전거를 세워두고 오전시간만 기다려 보기로 했다. 누군가가 우리를 데리고 것이라는 기대를 하며...
차는 왔지만 차있던가 아니면 만이 자연을 보러 일부러 왔다는 사람, 그룹인데 그렇게 하면 여행사에 추궁을 당한다는 .. 모두다 거절이었다. 케냐 사람들의 순진함과 어려움이 있으면 즉시 도와주려고 하던 모습을 보다가 메마르고 이기적인 유럽 사람들을 보니 없는 자의 행복이 떠올랐다. 그렇게 오전 시간을 허비하면서 공원 관리인 여자랑 이런저런 말을 하게 되었고 그녀는 공원입구에서 가끔 단체들이 캠핑을 하는데 우리가 원하면 물을 연결 시켜 주겠다며 저녁에 캠핑을 하면서 동물의 소리도 듣고 내일이 마침 시에서 주민들을 위하여 공원을 순회하는 버스가 있다며 버스를 이용하여 공원에 들어갈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있다며 나의 의견을 물어왔다. 입구 안을 보니 바로 관리실과 연결되어서 위험한 것은 없겠고 화장실은 있고 자전거는 타지 않았으니까 달리 샤워는 필요 없겠고 힘들어도 한번 해보고 싶은 용기가 생겨 동의하고 텐트를 치고 우리는 시내로 나가 먹을 것을 가지고 돌아왔다. 우리가 텐트를 곳에  갑자기 하나 원숭이가 몰려들기 시작하더니만 순식간에 우리를 돌라 우리에게 접근하는 것이었다. 관리실에서는 우리가 놀랬을까 총을 공중으로 쏘며 원숭이들에게 가까이 가지 말라는 표시를 하였다. 솔직히 나는 너무나 겁나고 갑자기 원숭이들이 우리를 습격하면 어떻게 하나 너무나 불안했었다. 관리인 말이 음식만 보이지 않게 두고 그가 항상 곁에만 있으면 되며 겁먹을 필요는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말을 듣기는 했지만 처음 괴상하게 생긴 원숭이들이 마리도 아니고 70마리나 되는 듯하고 소름까지 끼치고 나는 그에게 다시 텐트를 철거하자고 온갖 호들갑을 떨었다. 그는 가려면 혼자 가라며 한번 결정한 일을 경험하여 보자며 본인이 나를 지켜줄테니 걱정 말라며..
관리인 말대로 원숭이들은 우리가 무엇을 하는가 지켜 볼뿐 이였고 우리도 원숭이가 무얼 하나 지켜보았다. 사람 같았다. 서로 앉아서 등을 긁어주는 행동, 머리에서 무엇을 끄집어내는 행동, 원숭이가 나무 위에서 볼일을 보면 괴상한 소리를 다들 내며 원숭이를 놀리는 같은... 나무에서 다른 나무로 뛰어다니고 재주를 부리고 싸움을 하는지 갑자기 시끄럽게 달아나고 쫓고.. 처음에 그렇게 무섭게 생각되던 원숭이가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과 너무나 비슷하게 생각되고 행동이 정겹게 느껴지기 시작했다해가 지기 시작하니까 모두들 잠자리를 찾으러 나무 위에 올라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주의는 다시 아주 조용해졌고 우리도 잠을 자야만 했다. 하지만 나의 많은 성격은 원숭이들이 밤에 모두 우리텐트에 습격을 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뿐이어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원숭이는 마리도 없었는데 밤에 원숭이가 텐트 바로 앞에다 실례를 하고 자국은 있었다. 관리인에게 이야기를 하니 남자 원숭이가 나를 보고 놓은 짓궂은 장난이라며...
<div align='center'><img src='image/Tour01_008.jpg' alt='Tour01_008'></div>
얼룩말

<div align='center'><img src='image/Tour01_009.jpg' alt='Tour01_009'></div>
길거리의 기린이 동상인줄 알았으니


인도
한국에서 태어난 것에 다시 한번 감사한 . 가난과 .
종교  삶에 대해서 심사숙고 하게 . 자전거 여행은 도로에 짐을 싫은 트럭이 많아서 조금 위험할 때도 있지만 거의 도로에 차량이 없어서 위험 없이 여행함.
타즈마할,부드가야, 우다이푸어 아름다운 곳이 많다.
문화적 충격이 제일 많은 여행 지이지만 가장 인상 깊은 곳이다.
한국 관광객. 장명숙 선생님과 다른 선생님들 , 안태욱을 만난 특별한 인연이 있는 여행지다.

트럭과 트럭사이의 묘기-우리가 007이다.
낙타 떼와 떼들과 유채꽂을 배경으로 자전거를 달리는 일은 너무나 한가롭고 평화롭고 기분 좋은 일이다. 차랑 없이 그와 장난을 치며 달리는 경우에는 더더욱 힘이 나고 신났다.하지만 이러한 만족이 매일 같이 있으면 좋으련만 거의 손꼽을 정도였다. 도로에는 온갖 더러움과 오물들이 뒤죽박죽 있고 완전히 트럭 세상이었다.
<div align='center'><img src='image/Tour01_011.jpg' alt='Tour01_011'></div>
인도의 일반적인 교통

처음에는 그렇게 막대한 트럭이 짐을 가득 싣고 당장이라도 실은 물건이 쏟아질 같아 나는 겁이 나서 도로 가장자리로만 달렸었다. 그런데 건너편에서 대형 트럭이 오고 나의 뒤에서 오는 트럭이 나를 추월하면 나는 완전히 도로 바깥으로 나가게 되어 당장이라도  논두렁에 빠지는 듯한 위협 감을 종종 느꼈다. 바라나시를 벗어나는 것도 하나의 곡예였건만 도로는 질퍽거리고 아주 검은 색의 땅이었다. 무슨 일인지 트럭들과 릭샤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고 우리는 빠져나갈 구멍을 찾아야만 했다. 나도 이젠 제법 용기가 생겨 요리저리 빠져나갔다. 그렇게 빠져나가면서 검은 탕에 미끄러지면 꼴이 말이 아닐텐데 조심해야지 하며 신경을 쓰고 달렸고 우리는 어려운 고비를 무사히 지날 있었다. 그런데 그곳을 겨우 벗어났건만 다른 어려운 코스가 보이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지 차는 생각을 하지 않았고 완전히 트럭으로  있었다. 옴짝달싹도 없었다. 샛길도 보이지 않았고 단지 틈이 있는 곳은 트럭과 트럭 사이일 뿐이었다. 그는 트럭과 트럭 사이로 가재며 이렇게 언제 까지 기다리고있을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용기는 처음에 생기질 않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트럭이 시동이라도 걸어 움직이기라도 한다면 너무나 위험한 일일 테고 기다려 보자고 했지만 고집불통인 그는 나더러 혼자 기다렸다 오라면서 혼자 앞으로 가는 것이고 아무리 거기에 서서 기다려도 차가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아 조심스럽게 자전거를 끌고 트럭과 트럭 사이를 갔다. 가도 끝이 없었다. 인도에 있는 트럭은 거기에 모여 집회를 하는 것인지 트럭뿐이었고 내가 자전거를 끌고 걸으니 어떤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고 가라는 시늉을 하며 그가 앞에 갔다는 손짓도 해주고 그랬다. 걷기에는 너무나 끝이 보이는 곳이고 나도 용기를 내어 자전거에 올라탔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같은 느낌이었다. 아주 좁은 곳을 그는 어떻게 트레일러를 달고 달렸는지....
그리고 나를 보살펴 생각도 하지 않고 자기 혼자만 앞으로 전진을 것이 얄미롭고 심술이 잔뜩 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우리는 조그마한 자전거라서 지역을 무사하게 빠져 나올 있었고 이런 경우가 정말로 자전거가 유용하게 쓰이는구나 싶고 그리고 나를 두고 혼자 가버린 그가 미워서 바탕 싸우려고 했지만 나에게는 다른 용기가 생기게 되고... 상황에서 나는 자전거를 달리며 007 따로 있을까 우리가 007이지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div align='center'><img src='image/Tour01_012.jpg' alt='Tour01_012'></div>
쓰레기를 맛있게 먹고 있는 인도 돼지


태국
모든 것에 만족한 나라. 도로 사정, 사람, 음식, 자연환경. 관광객 유치가 아주 잘되어 있는  곳이라 자전거 여행도 아무 문제 없이 .

첫날부터 태국에 받은 인상은 좋지만 더욱더 정겹고 자전거로 달리는데 힘이 절로 났다.
여러 곳에 코끼리 쇼를 하는 곳이 많다는 표지가 쓰여있어 동물학대라고 보지 않겠다는 그를 설득시켜 갔더니만 더위 때문에 오전만 하고 오후에는 해가 무렵 한번 다시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자전거로 여행을 하고 다시 오기 힘들 다고 하니 관리하는 사람은 사진을 보여 주며 사진하고 같이 한다는 것이었다. 코끼리에게 바나나를 먹여주거나 속에서 씻는 , 아기 코끼리가 엄마코끼리에게 가서 재롱을 피우는 모습 ,그리고 약간의 묘기를 보여주며 대나무를 타고 가는 것이라며 더위에 동물에게 시간마다 하라고 시키는 것은 차마 못할 짓이라며...쇼도 볼만하고 흥미로운 것이겠지만 갖추어진 시설과 장소는 가족 단위로 와서 쉬기에는 너무나 좋게 꾸며져 있었고 우리는 곳에서 쇼를 거나 다름없이 설명을 듣고 책에 쓰여 있는 방갈로를 찾아갔다. 도시에서 되는 거리라고 쓰여있었지만 20km 떨어져 있는 곳이었고 정말로 이런 외진 곳에 방갈로가 있을까 싶었다. 사람들에게 물으니 들어가면 있을 거라고는 하는데 문을 열었는지, 방갈로가 것은 아닌지... 항상 무엇을 찾아가면 길이 멀고 힘들게만 느껴지는 법이라고.. 더위에 지쳐서 빨리 휴식처를 발견하여 쉬고 싶었건만 친데 덥친꼴이라고 그의 자전거에 펑크가 났다는 것이었다. 더위에 앉아서 펑크를  때워야하는데 모기까지 극성을 부리기 시작했다. 나는 방갈로를 찾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도시로 가자고 하니 그는 찾아서 그림과 같은 곳에서 휴식을 취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짜증을 낸다고 해서 해결되는 일도 아니었고 10 정도 가보고 없으면 돌아가자고 제안을 했고 그렇게 하기로 했다. 조금 가니 동굴이라는 표시가 있었고 관광객들이 눈에 뜨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깊숙한 곳에 숨어 있다니..
정말로  모습은 영화에서나 있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앞은 같고 뒤로는 바나나 나무랑 야자수 나무랑 ..너무나 평화롭고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이었다. 방갈로 주인은 독일에서 살은 경험이 있어 주위에 만한 것을 알려주었고 우리는 동굴 사원이 있다는 곳을 방문했다. 모습은 동굴인데 안으로 들어가니 수천 개의 불상이 있었으며 모습이란 화려하고 웅장하고 근엄했다. 그곳으로 많은 사람들이 도를 닦으러 온다고 이유가 고개가 끄덕여졌다. 나도 분간 안에 앉아 있으니 마음이 차분하고 평정을 찾은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그리고 다음 날은 속에 감추어진 사원을 방문하고 주의를 자전거로 다니며 자연에 흠뻑 취할 있었다. 정말로 태국은 사원의 나라이고 아름다운 자연을 가진 곳인 같다.
<div align='center'><img src='image/Tour01_013.jpg' alt='Tour01_013'></div>
태국의 산속에 숨은 사원

<div align='center'><img src='image/Tour01_014.jpg' alt='Tour01_014'></div>
코타우 


인도네시아
자연환경 멋있고 섬과 섬을 다니면서 자전거 여행. 가끔 비가 와서 힘들었고 사람들이 조금 거세어서 여행하는데 짜쯩. Hello Mr! 어딜 가도 소리를 들어야 하니! 발리 섬과 롬복섬은 환상 그리고 다른 섬들도 아름다움.
<div align='center'><img src='image/Tour01_015.jpg' alt='Tour01_015'></div>
수마트라 

나도 원숭이 처럼 나무를 오를 있다
갑자기 아스팔트길이 끊기고 울퉁불퉁 자갈길이 나오기 시작했다. 길에서 나오는 소형 트럭이 있어 목적지를 물으니 계속 가라는 표시를 해주는 것이었다.가도 가도 자갈길은 끊기지 않았고 1시간 가량 자전거를 끌면서 가니 자갈길은 끊기고 비포장 도로가 나오기 시작했다. 비가 트럭이나 미니 버스들이 달려서 인지 도로에는 골이 많이 파여 있었고 자전거로 겨우 달릴 있는 상황이었다. 그는 나에게 다시 왔던 길로 돌아가자고 하였지만 나는 앞으로 전진은 이상하지 망정 후퇴를 하면 어떻게 하나며 우리가 가는 방향은 맞으니까 그대로 보자고 하였다. 쨍쨍 내리쬐는 햇님과 야자수 나무와 우리 둘밖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물은 동이 나고 우리는 땀으로 목욕을 듯한 느낌을 받았고 갈증과 더위로 이상은 앞으로도 뒤로도 없는 상황임을 느꼈다.
<div align='center'><img src='image/Tour01_019.jpg' alt='Tour01_019'></div>
자바에서 힘든 여정

자전거를 두고 조금이나마 휴식을 취하려고 했고 그는 생각하다가 못해 야자수 열매를 따려고 시도를 했다. 있는 노끈에다가 돌멩이를 달아 위로 던졌지만 무거운 야자수 열매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고 둘이서 별별 수단을 쓰며 야자수 열매를 따려고 했건만 포기에 포기... 멀리서 자동차 소리 같은 것이 가까이 들려서 이제 우리는 돌아가는 교통이던지 무슨 방법을 발견하겠다 싶어 기다리니 조그마한 오토바이를 사람이 오고 있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사람에게 정지를 요구했고 물이 없냐고 영어로 하니 알아듣지를 못하고 하여 마시는 포즈를 사람에게 야자수 열매를 가리키며 위로 올라가 열매를 밑으로 내려 달라는 표시를 했다. 사람은 나의 바디랭귀지를 이해하였던지 나무위로 올라가더니만 여러 야자수 열매를 우리에게 떨어뜨려 주었다.. 뾰족하게 생긴 돌멩이에다가 계속한 부분을 찍으니 야자수의 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때의 환희는 누구도 모를 것이다 나는 벌컼벌컼 없이 들이켰고 다섯 개도 넘는 야자수 열매를 한꺼번에 마셨다. 그러고 나니 갈증이 조금 가셔지기 시작했고 정신으로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div align='center'><img src='image/Tour01_018.jpg' alt='Tour01_018'></div>
갈증에 최고인 코코낫

그렇게 갈증을 해소하고 우리는 마을이 나타나기 만을 고대하며 달렸다. 달릴 있는 길의 상황이 아니 었다. 그는 마을이 나오지 않으면 비를 피할 있는 곳도 없고 낭패라며 최대한의 노력을 나에게 하기를 요구했다. 날은 어둑어둑 해지고 나는 벌써부터 무서운 생각으로 사로잡혀 눈에는 눈물이 글썽 해지고 다리가 아파 걷지도 타지도 못하겠고 기절 일보직전이라고 생각되었다. 이상 어두워지기 전에 길에다 가라도 텐트를 치던가 해야 되겠다고 하는 순간 우리는 마을을 발견했다. 집들은 개밖에 없었고 우리는 책에서 읽은 대로 반장 집을 물었다. 그런데 어느새 천둥은 아주 가까이 와서 비를 안겨다 주었고 우리가 반장 집을 물었던 주인은 자기 집이 누추하지만 자라는 것이었다. 마을의 선생님이라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도네시아 책을 찾아 걱정하지 말라며 설명을 해주는 것이었다. 얼마나 분이 구세주 같았던지.....욕실과 화장실은 뒤에 나무 천막으로 쳐져서 비를 맞으며 샤워를 했고 그렇게 라도 땀을 씻고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우리가 잠깐 쉬고 있는 사이에 선생님은 책을 보며 질문을 찾아서 우리에게 물어왔고 우리는 우리의 목적지인 도시를 설명하고 서로이해를 시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가장 미안하고 고마웠던 것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잠자리를 제공해주고 쉬게 해준 곳도 있지만 기르던 닭을 잡아서 후라이드 치킨을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외국 사람들이 후라이드 치킨을 좋아한다는 것을 들었던 모양이다. 우리 나라도 시골로 가면 손님접대가 아주 정성 적이고 따뜻하지만 인도네시아에서 그렇게 따뜻하게 대접을 받아보긴 처음 이었다. 가난해서 먹을 것도 제대로 없을 텐데 기르는 닭까지 잡아주고.. 다음날도 하루 머물고 가라는 것을 겨우 사양하고 답례로 얼마 되지 않는 돈을 주니 받지 않겠다고 하여 감사표시를 하느라고 힘들었던지 모른다. 그렇게 하루만으로 어려운 고비가 끝나리라고 생각했지만 그날도 계속 그러한 길을 달려야만 했었고  우리는 열악한 상황에 오면 사람은 어떠한 일이라도 있다는 말을 뼈저리게 체험했다.
비록 자전거로 다니기에는 열악한 상황이었지만 동안 인도네시아 사람들에게서 받아오지 못했던 사랑도 느낄 있었고 아직도 황폐되지 않은 순수한 자연을 있는 좋은 기회였던 같다. 이렇게 모든 것이 당시에는 이를 바드득 갈면서 다시는 이러한 과오를 범하지 말라야지 하면서 지나고 나면 그렇게 힘들고 어려웠던 것도 추억으로 생각되니 묘한 일인 싶다.
<div align='center'><img src='image/Tour01_016.jpg' alt='Tour01_016'></div>
수마트라의 북서쪽

<div align='center'><img src='image/Tour01_017.jpg' alt='Tour01_017'></div>
점심은 과자로 때우고

발리섬의사기
사람들은 우리가 자전거를 타고 가니까 반갑다며 소리를 지르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항상 듣는 Hello Mr 빠지지 않았고 괴상한 말도 되는 영어를 아주 자신 있게 하면서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대답을 해주지 않는다며 돌멩이를 던지고...수마트라랑 그렇게 거리인데도 아마 기본 민족성은 같은 모양이라고 극성스럽게만 생각 되었다. 소년이 자전거에다가 야자수를 싣고 오는 모습이 보였다. 소년에게 야자수 열매를 나에게 팔라고 하니 이해는 하였는지 야자수 열매를 자르지 않고 반을 가르는 것이었다. 나는 아니라며 열매의 물을 마셔야된다고 표시를 했지만 소년은 다시 다른 개의 야자수 열매를 반으로 잘라서 나에게 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나에게 돈을 달라고 .. 나는 얼떨결에 처음에 약속이고 하여 돈을 지불하고 혼자 그렇게 생각을 했다. 발리 야자수는 틀린 모양이다 라고.. 그리곤 점심 먹을 그에게 얘기를 하니 내가 소년에게 당했다는 것이었다. 소년이 벌써 열매의 물은 마시고 안에 있는 것만 나에게 것이라며 그렇게 야자수 열매를 많이 마셔놓고는 어떻게 그러한 괴이한 생각을 있는지 나에게 순진하다며 놀리는 것이었다.발리는 사람들이 칭하는 환상의 섬처럼 아름답기는 하였지만 인심이 많이 사나와 하여 아쉬웠고 이상 그들이 돈의 노예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램이다. 순수한 발리 사람들과 아름다운 자연이 조화를 이루면 더욱 환상적일텐데....
<div align='center'><img src='image/Tour01_021.jpg' alt='Tour01_021'></div>발리섬


필리핀
총기를 들여대고 너죽을래" 으메 겁나는 . 한국이 그리워 병이 난곳.

섬에서의 감금
야자수도 너무 많이 보아서 이젠 소나무랑 다른 나무들이 그립고 그리고 매일 보게 되는 바다에 대한 낭만도 떨어지고, 더군다나 계속 태풍의 영향으로 비가 하루에 번씩 쏟아져 자전거 타는 데에 아주 낭패이고, 하지만 위로가 되었던 것은 따뜻한 사람들 때문이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에게 너무 시달려서 인지 필리핀 사람들의 억양과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어로 대화가 통하여 모든 것이 오해도 없고 비가와도 순조롭게 풀리는 듯했다. 우리는 태풍 때문에 아름다운 바닷가 해변에서 쉬면서 다는 나라 여행객도 사귀고 시간을 조금은 한가하게 보낼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3 쉬면 자전거가 타고 싶어 몸이 꿈틀거리게 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태풍이 오는 곳으로 경로를 바꾸어 가는데 지도책으로 아주 조그마한 섬이 중간에 있다며 그는 섬으로 가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세부에 가니 섬으로 있는 배편이 있었다.
<div align='center'><img src='image/Tour01_023.jpg' alt='Tour01_023'></div>
세부의 대나무

마침  섬에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여행객을 만나니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라며 가보길 권장하는 것이었다 .여행객도 없고 사람들도 때묻지 않고 본인은 파라다이스를 발견한 기분이라는 소리에 나는 다른 것은 생각을 하지 않고 섬으로 가는 것에 동의를 했다. 섬으로 가는 배를 탔건만 섬에 내리는 곳이 여러 곳인데 우리를 엉뚱한 곳으로 내려 주면서 거기서는 교통 수단을 이용하던가 아니면 자전거로 가라는 것이었다. 섬의 사람들은 구경거리가 생겨 다들 나와서 관심을 보였고 거기서 캠핑을 하라며 그리고 다음날 떠나라고 권유를 하였고 물도 제공해 준다고 하여 오랜만에 캠핑을 하기로 하였다. 열심히 모래 사장 위에 텐트를 치고 나니 아주머니가 오더니만 그날 밤에 태풍과 비가 내리친다는 라디오 방송을 들었다며 본인이 혼자 사는데 거기서 머무르기를 권하였다. 처음에는 날씨도 맑아서 괜찮을 거라고 거절을 했는데 자꾸 권하고 정말로 태풍이 저녁에 갑자기 닥쳐오면 이태리에서처럼 힘들게 같아 아주머니 집으로 짐을 옮겼다. 그날 밤에는 정말로 태풍이 왔다. 심한 바람에 파도에 그리고 비에 아주머니 집은 마을에서 제일로 튼튼하게 지은 것으로 보이는데도 아침에 일어나 보니 거실 천장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야자수 나무들이 꺾인 모습도 보이고 그리고 보슬비는 계속 오고.... 기회에 며칠 쉬게 되겠구나 싶어 아주머니에게 2틀간 비가 멈출 때까지 쉬겠다는 양해를 구한 우리는 오랜만에 소설책도 읽으면서 시간을 한가하게 보냈다. 그렇게 하염없이 쉬는 것도 좋지만 다음 경로로 떠나야 되어 섬에 있는 항구로 가니 다음날 배가 떠난다는 것이었다. 매일 배가 떠난다고 하여 우리는 이틀은 쉬면서 이틀은 섬을 곳곳이 다니면서 구경을 하였다. 아직 관광객이 전혀 찾아오지 않는 곳이라서 깨끗하고 사람들도 아주 순수하고 길은 비포장도로이라 자전거로 달리기에는 힘들었지만 나름대로 재미 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우리에게 이것저것 먹을 것도 가져다주고 우리가 무얼 하나 지켜보려고 하고 원숭이가 철창에 갇힌 듯한 기분도 없지 않게 들었다 그렇게 4일을 지내니 다시 안장에 앉아 페달을 돌리고 싶은 충동이 생기길 시작했다.
아쉽게 동네 사람들과 작별을 하고 우리는 배가 떠난다는 항구로 시간을 맞추어서 갔다. 바다는 고요한데 배는 뜨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다음날도 배는 떠나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다만 천천히 가는 그런 배가 나오라는 곳으로 가는데 배를 이용하여 도착한 자전거로 40km되는 거리를 세부로 가면 된다는 것이었다. 파업에 들어간 건지, 아니면 무슨 이유인지 항구 사람들도 확실한 이유를 모르겠다고 하고 그렇다고 계속 그렇게 기다릴 없고 하여 조금 힘들고 번거롭겠지만 다른 배를 이용하여 카모테섬을 떠나기로 했다. 섬을 떠나려고 하니 아이들이 본인들을 사진을 찍어 달라고 온갖 재주를 부리고 그와 장난을 치고 아이들과 헤어지는 것이 아쉽긴 했지만 이별은 다음 만남을 기약한다 생각하고 우리는 배에 올랐다. 1시간쯤 갔을까.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기 시작하더니 고요하던 바다에 강한 바람과 파도. 배는 출렁출렁 거리고 우리 자전거는 움직임과 요동 탓으로 쓰러지고 ,들이닥치는 비를 막느라고 급하게 천막을 치고 순식간에 배는 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배가 얼마나 요동을 하는지 속은 미식거리고 오바이트를 하고 파도에 의하여 바닷물이 안으로 들어오고 나는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 되는 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는 그냥 기진 맥진해서 쓰러졌고 바닷물로 인해 나의 옷과 우리 짐들은 모두 젖었고 죽어도 이렇게 죽는 것은 참으로 비참하다 싶고 도와달라고 기도만을 수밖에 없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기진맥진하여 쓰러져서 잠이 들었고 우리는 도착지에 무사하게 왔다. 짐은 모두 바닷물에 젖어 있고 사람들의 모습은 지쳐 있었다. 나는 일어 수도 없이 힘이 빠져서 걸을 없었지만 바닷물에 빠져서 죽지 않고 이렇게 살아서 오게 것만으로도 감사 드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다시는 그러한 배는 타지 않을 거라고 그리고 필리핀을 떠날 때까지 아니 여행이 끝날 때까지 배의 이용을 피해야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div align='center'><img src='image/Tour01_024.jpg' alt='Tour01_024'></div>
폭풍이 다가온다


한국
서울에 도착하여 U 자형 해안도로를 따라 고향 강릉까지 1달간 여행함.
역시 우리나라가 4계절이 있고 행복한 곳이다.

한국에서의 실질적인 자전거 여행이 시작된 날이다. (10.3) 인디아 여행 우연히 알게된 스위스 사람 Raphael 한국이 가을이 상당히 아름답고 자전거 타기에도 분명히 좋을 것이며 우리도 가을에 한국에 도착하게 되며 경로가 가는 길이면 들리라는 나의 무심코 지나가는 말을 진심으로 믿고 일부러 한국에 왔다.천안에서 서산으로 향하는 국도628 완연한 가을의 냄새를 풍기게 했다. 또한 주말이나 연휴 도시의 번거로움에서 벗어나 자연을 체취 있도록 곳곳에 위치한 커피숍. 식당.. 드라이브 코스로는 아주 좋은 곳인 같다.자전거로 달리기에도 아주 조용하고 코스모스도 많이 피어있고 기분은 날아갈 것만 같았다.우리는 동생이 정성 들여 싸준 김치전과 밥을 먹으려고 자리를 폈고 금방 사람들은 우리에게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아줌마와 아저씨는 오셔서 우리가 먹는 것을 보시더니 조금 빨리 왔더라면 함께 식사를 있었을 텐데 하시며 남은 반찬과 후식까지 가져다주시고 한국 사람들의 따뜻한 정을 그와 라파엘이 첫날 받게 되어서 흐뭇했다. 우리는 목적지인 서산에 도착했고 숙소를 구하는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라파엘은 부산에서 하루 만원정도를 주고 잤다며 수준에서 찾아달라고 하고 장이라고 붙여진 곳에 가서 물으니 삼만 원이 넘는 가격이었다. 사람이 한방에서 자게 되면 라파엘의 경비를 조금이라도 줄여줄 같아 군데에 물으니 혼숙은 불법이라고 하고 라파엘은 여인숙에 알아보자고 하였다. 황당한 것은 내가 있냐고 물으니 자고 것인지 쉬고 것인지 이유부터 얘기를 해야지 가격을 얘기할 있다는 것이었다. 여인숙은 비용도 싸지도 않았을 뿐더러 너무나 지저분하고 공용 욕실과 화장실 이용이었다 .첫날이지만 조금씩 남자를 그것도 거장들을 데리고 다니며 숙소를 알아보러 다니는 것에 대해서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묻는 곳마다 번째의 질문이 자고 것이냐며 내가 방을 보자고 하니 다들 이상한 눈으로 보고 상당히 묘한 기분이었다. 다른 나라에서도 항상 방의 상태를 점검하고 그리고 정했는데 한국은 그것이 관례가 아닌지...
남하고 더불어 사는 연습이 부족해서 일까? 라파엘은 고기도 먹는 다고 하여 식당을 고르는데도 적지 않게 신경이 쓰였고 첫날부터 87km 오르락내리락하고 달렸더니 몸이 피곤하기만 했다. 그런데 라파엘이 밤새도록 코를 고는 바람에 그와 나는 잠을 숨도 자지 못했고 나는 도저히 없는 얘기를 그는 라파엘에게 했다. 함께 여행하는 것은 좋지만 한방을 쓰는 것은 불가능하며 본인에게 숙소의 비용이 너무 비싸면 잠은 다른 곳으로 정해서 자자고. 정말로 그런 말은 부러진 외국 사람들의 사고에서만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괜히 라파엘에게 미안했다. 한국에 오라고는 해놓고 우리랑 다니면서 비싼 숙소에서 자야되고 그리 챙겨주지 못하는 같아서 말이다.
그렇게 3일간의 여행. 4일째는 기대하지 않은 비가 우리를 반겨 주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오후에 온다는 비를 피해 떠나려고 온갖 무장을 다하였건만 비는 아침부터 주룩주룩 내리기 시작하였고 하루 종일 방안에서 있기는 시간 낭비이고 무료하고 하여 우리는 버스를 타고 군산시내로 나갔다. 시장에 가서 과일을 때나 슈퍼에 때나 밥을 먹을 때나 그와 라파엘이 너무나 크고 내가 너무 작으니까 쳐다보고 아줌마 아저씨들은 장난과 농담도 하시곤 하셨다. 금강에서 부안까지는 도로사정이며 최악이었다. 무리로 다가오는 트럭들. 트럭의 웅장함에 겁먹은 우리들을 장압 하려는지 옆으로 지나가면서 크락션을 펑펑 울려대어 알면서도 엉덩이가  얼마나 들썩했던지, 도로도 2차선인데다가 비상도로도 제대로 없고 길은 울퉁불퉁 정말로 자전거 타는 것이 재미없었다. 부안에 도착하니 짧은 거리이긴 했지만 힘이 빠짐을 느낄 있었다. 우리의 늘어진 어깨를 눈치를 채신 것인지 점심을 먹으러 식당 아주머니가 너무나 따뜻한 인정을 베풀어 주셨다. 도너츠랑 다른 것도 시식해보라며 식탁에 갖다 주시고 본인이 하지 못하는 신기한 자전거 여행을 한다며 너무 부럽다고 하시며 많이 먹으라고 계속 먹을 것을 챙겨 주셨다. 우리는 다시 어깨를 높이고 휴식을 취한 채석강을 향해 떠났다. 아름다운 바닷가를 따라 달리는 기분은 누구도 스스로 해보지 않고는 느끼는 감정이리라... 채석강은 정말로 10 사이에 너무나 많이 변화되어 있었다. 식당 기타 상가들도 많이 생기고, 둑도 생기고 바닷가가 보이는 채석강에서 숙소를 정한 우린 채석강의 아름다움을 만끽했다. 바다노을과 낚시꾼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단지 아쉬웠던 것은 관광지인터라 숙박비가 비싸고 채석강을 보는데 입장료를 내야 된다는 것이 껄끄로왔다. 우리는 다음날 채석강 주의에 아름다운 내소사가 있다고 하여 등산에 들어섰다. 채석강에서 버스가 자주 없다고 하여 버스를 기다리며 수다를 그와 라파엘은 열심히 떨고 있었고 드디어 기다리던 버스가 와서 내소사에 도착...
웬일. 그가 묻는 카메라 어디 있지? 버스 안을 뒤졌지만 카메라는 보이지 않았고 버스를 기다리며 라파엘과 수다를 떨다가 자리에 놓고 같다는 것이었다.
 가방 안에는 카메라뿐만 아니라 돈과 여권 중요한 우리들의 서류는 들어 있는데 무슨 남자들이 수다가 그리도 많은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의 부주의에 화가 났다. 일단은 일을 빨리 수습해야 되었기에 경찰서에 전화를 하여 사정얘기를 했다. 버스가 와야지 채석강으로 돌아갈 있고 길로 나가서 오는 택시나 차량이 있으면 타고 가겠다며 가게 앞에 가방이 있는지 알아보아 달라고 부탁하였다. 나의 화를 나게 했던 것은  상황에서 라파엘은 자기는 무얼 하며 지네냐고 묻는 것이었다. 너무나 이기적임이 느껴지고, 지금 남은 급한 상황인데 내가 본인이 어떻게 하면서 지내는 것까지 신경을 써달라고 하니....
 성질을 참지 못하고 하고 싶은 대로하라고 지금 상황에서 말이냐며 길거리로 차를 잡아타기 위해서 걸어나갔다. 정말로 사람이 자기자신밖에는 모른다고 하지만 라파엘의 반응이 너무나 화가 났고 나름대로 한국에 오라고 했던 말의 책임감도 있고 하여 잘해주고 힘들게 느껴질 때도 짜증도 내지 않고 다녔건만 순간에는 나도 이기심이 발동하여 라파엘과 여행하는 것을 그만 두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흥분됨 마음으로 차를 잡기 위해 기다리는데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카메라 가방을 찾았다며 구경을 하고 저녁에 찾아가라는 것이었다. 안도의 숨과 기분이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하고 괜히 조금 참을 것을 라파엘한테 심하게 듯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도 명이서 여행을 하니까 여러모로 불편했던지 불만이 있으면 풀고 지나가는 것이 좋을 거라는 것이었다.
내소사에 들어서니 라파엘이 우리를 보며 너무 반가워하는 것이었다. 내가 먼저 화내고 부분에 대하여 사과를 하였고 나의 불만에 대해서 얘기를 하였다. 아주 사소한 일로 받아들일 있지만 그것이 나에게는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라고 얘기하고 났더니 앓던 이가 빠진 듯한 느낌 이였다. 라파엘도 나의 의견을 존중하며 이해한다고 받아들였고 숙박요금이니 음식 때문에 자기도 신경을 매번 쓰게 하여 미안했다며 주의하겠다며 본인은 나로 인해 한국에서 편안하게 여행할 있으며 고개가 수그러지게끔 나에게 감사표시를 하는 것이었다. 라파엘과 시원하게 얘기를 하고 나고 그에게도 것을 풀고 나니 내소사 등반이 한층 신이 났다. 내소사를 보고 직소폭포 선녀 탕을 보는 등산을 하는데도 3시간의 등산시간이 필요했다. 등산길은 너무나 가파른 오르막길이였지만 웅장하고 아름다운 서해안의 모습을 있었다. 단풍이 곳곳에 있었고 보름 가량 지나면 더욱더 아름다운 자태를 보일 같았다. 채석강을 떠나는 일이 아쉽긴 했지만 우리는 다음날 영광을 향해 떠났다. 지도상으로 보니 채석강에서 목포까지는 차량도 상당히 많은 같고 볼만한 것도 없을 같아 너무나 차량이 많거나 힘들면 다른 교통 수단을 이용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도로에는 차량도 없고 날씨도 너무나 맑고 편안하게 달릴 있었다.
도중에는 줄포를 떠나 무창으로 가는 길에 고창 고인돌의 유적방문 표시가 되어있었다. TV에서만 보았던 고인돌을 직접 보니 느낌이 새롭고 정말로 선조 들의 지혜와 힘이 느껴졌다. 조금 아쉽게 느낀 점은 고인돌에 아직까지는 자세하게 설명이 쓰여있지 않아서 이해하는 것이 상상만으로 가능했고 빨리 설명이 부착되어 많은 방문객들에게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도착한 영광은 우리에게 또다시 비를 안겨다 주었고 갑자기 날씨도 춥고 유명하다는 영광굴비도 먹어보려고 하였건만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했고 영광에서 하루를 보내는 시간이 너무 아까와 우리는 비를 조금 맞아도 버스터미널까지 가서 목포로 향하는 버스 편을 시도 보기로 했다. 다행히도 많은 버스가 목포로 가는 것이 있었고 자전거가 3대이라 실을 불편이 따르지 않을까 염려했건만 버스가 텅텅 비였고 사람들이 아주 적극적으로 도와주어서 목포까지 무사하게 있었다. 목포에 도착하니 비가 조금 그쳤고 라파엘은 짧은 바지에 자전거를 비를 맞으며 타서 감기 기운이 있다며 쉬겠다고 하여 그와 둘이서 유달산을 보러 갔다. 유달산의 모습도 장대하였고 주의에 꾸며진 조각공원도 조화가 맞고 시민들의 휴식공간과 문화 공간으로는 좋은 듯했다. 숙소로 돌아오니 라파엘은 기운도 조금 있고 본인에게는 한국이 조금 비싼 관광지이고 그리고 날씨 또한 자꾸 비가 와서 그냥 있어야 되고 하여 다음날 서울로 버스를 타고 가서 호주로 가는 것이 좋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한국 가을날씨가 좋다고 했고 일부러 오라고 했는데 10 밖에 자전거를 타고 다른 나라로 가야 되다고 하니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혹시 서운하게 주어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하지만 라파엘은 그런 이유가 아니고 날씨와 재정적인 이유라며 한국은 다시 방문하고 싶은 나라이고 다시 것이라며 ,그때는 자전거 없이 방문 것이라며...
항상 사람과 이별하는 일은 힘들다지만 갑자기 뒤에서 나를 보호하며 오던 라파엘이 보이지 않으니까 너무나 허전했다. 그런 쓸쓸함을 느끼며 율포를 향하여 달리던 참이었는데 갑자기 택시 운전사가 우리 앞에 깜박이를 켜며 섰다. 본인도 상당히 여행을 좋아한다며 어떻게 여행을 시작했느냐? 본인의 궁금증을 우리에게 묻고 포도주스와 초콜릿을 건네주는 것이었다.
가끔씩 만나게 되는 사람들에게서 받는 따뜻한 관심과 . 택시 운전사의 따뜻함이 라파엘의 빈자리를 메워주는 듯했다. 저녁에 우리는 율포에 도착. 율포는 동네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조그마한 관광지라고 했지만 숙박시설이 너무나 엉망이었다. 군데에 여관이 이었고 모두 민박 이였는데 가격도 비싸고 위생시설도 엉망이었다. 많은 관광객이 오지 않는다고 해도 율포의 인심과 숙박 시설문제는 많이 개선되어야만 같다. 율포의 어설픔과 고요를 떠나 순천을 향했다. 순천으로 오는 바닷길은 너무나 조용했으며 도로에는 그와 둘이,간혹 정적을 울려대는 트럭. 동안의 여행에 대한 생각 많은 일들을 기억하게 하고 반성하는 시간 이였다. 거의 비가 내리기 시작하려고 우리는 순천에 도착. 순천은 소비 도시 인터라 역시 숙박비. 바가지 다른 보다 비쌌다. 순천 시내에서는 볼거리가 마땅하지 않고 가깝게 위치한 송광사와 선암사의 방문을 권유받은 터라 송광사에서 선암사까지 등산을 계획했다. 순천에서 송광사로 가는 좌석버스는 자주 있었고 50분의 버스소요가 필요하였고 송광사에서 선암사까지는 3시간의 등산이 필요했다. 송광사는 절의 규모가 상당히 크고 보수공사를 많이 탓에 현대적인 느낌이 들었고 선암사는 자연그대로의 모습인 듯하여 왠지 정이 가는 듯하였다. 순천을 떠나 여수로 향하는 국도에는 차량이 거의 없고 보슬비가 조금씩 내리다가 그친 가을의 신선함이 피부 깊숙하게 느껴졌으며 먹음직스러운 감이 주렁주렁 열려 감도 따먹으며, 정말로 따먹는 감의 맛은 너무나 맛있었다.
여수는 순천에서 거리가 아니라 빨리 도착하여 돌산도 가서 보고 오동도도 자전거로 타고  관광객을 위한 여수 주변의 섬을 돌아 있는 프로그램도 많았다.
우리는 여수에서 배를 이용하여 남해로, 남해를 거쳐 사천으로 가서 거제도를 가려고 했던 계획을 바꾸어야만 했다. 남해에서 사천가지 가는 배가 없으며 다가오는 폭풍 때문에 오후에 배가 남해로 갈는지 여부를 확실하게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남해에 도착한다고 해도 비가 오지 않는 다는 보장도 없고 숙박 관계도 그렇고 일단은 무엇보다도 태풍이 오면 자전거로는 꼼짝 달싹을 없는 상황이 오기에 궁리 끝에 모든 일정을 포기를 하고 부산으로 가기로 했다. 사실 하루가 멀다하고 비는 오고 조금은 한국여행에 짜증이 오기 시작했다. 부산에 버스를 이용하여 저녁5시에 도착, 갑자기 몰아닥친 추위였다. 부산터미널 근처에는 의외로 깨끗하고 가격도 대도시에 비해선 비싸지 않은 곳이 여러 있었다. 많은 곳을 여행하면서 느낀 거지만 우리 나라 사람들은 자전거를 숙소의 안전한 장소에 집어넣겠다고 하면 이해를 못한다. 그중 자전거를 안전하게 보관이 가능한 곳으로 우리는 숙소를 잡고 비를 맞아야만 했다. 내가 예전에 지켜본 한국의 가을은 너무나 청명하고 좋았건만 우리가 시기를 잘못 맞춘 것인지 춥고 비오고 ...모국이 협조를 하여 주는구나, 슬프다 라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부산의 이름난 자갈치 시장은 언제나 보아도 활기 있고 재미있고 입맛을 당기게 하는 곳인 같다.오징어 잡이가 되어서 인지 많은 오징어가 배에서 기계에 실려 나와 트럭에 포장되었으며 풍부한 해산물, 그리고 어부들, 소일거리를 하는 아낙네의 모습은 보기가 좋았다. 하루 종일 사람들과 어울려 이야기를 하며 고기 잡는 어망을 꿰매는데 바구니를 마치는데 3000원이며 일의 속도에 따라 수입은 결정된다고 하였다.
냄새가 나고 하는 곳이었지만 그들과 함께 수제비도 맛있게 먹고 내가 보기에는 힘들어 보이는 일이었지만 아무불평도 없이 일하며 서로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물질적으로는 가진 것이 비록 없지만 정신적인 행복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해운대 주변은 너무나 많이 바뀌어서 모습은 전혀 기억이 없었고 많은 지역이 공사중이라서 조금 어수선했다. 부산은 적어도 1주일 이상 머물면서 구경을 해야 되지만 우리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울산을 향해서 떠났다. 울산은 조선소 현대 자동차로 알려진 곳이고 부산에서 조선소 방문이 어려워 울산 현대 중공업 방문을 요청하였더니 현대중공업에서 우리에게 특별 방문을 허락하여 주었다. 조선 업이라면 세계적으로 알려진 현대의 위력 또한 현대 중공업의 정성들인 설명 인터뷰 등은 왠지 그에게 성장된 한국의 모습을 직접 체험할 있게 해준 듯하여 더더욱 어깨가 으쓱해지는 듯한 느낌 이였다.
대구에서는 오후까지 시간이 나서 사람들의 말을 들고 대구 시내의 모습을 한꺼번에 있는 대구 앞산공원에 갔다. 하지만 서두른 이유 탓인지 무엇 때문인지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케이블카를 타기 전에 분명히 케이블카를 타고 어디까지 올라 있으며 무엇을 있느냐고 물었더니 대구시내를 있다고 하여 올라갔더니만 다른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야만 된다는 것이었다. 잘못된 안내와 짧은 거리의 비용이며 다른 케이블카의 비용은 따로 내야 된다고 하고 ,요금이 문제가 아니라 잘못 안내를 해주어서 시간도 촉박한 우리들에게 올라가게 사실이 너무나 흥분하게 만들었다. 우린 매표소로 다시 내려왔고 실랑이를 했다. 아무 영문도 모르는 관리 아저씨는 내가 외국 사람하고 살아 한국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며 표를 판매하는 아가씨는 우리에게 그러한 안내를 일이 없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사람을 순식간에 거짓말쟁이로 몰고 한국말도 제대로 이해 못하는 한국사람의 취급을 받고 나는 이상 소리 필요도 없고 아저씨 성함과 아가씨 이름을 달라고 하였다. 회사에 항의를 하겠다고..
그랬더니 아가씨를 불러 어떻게 안내를 하였나 에서부터 따져보더니만 잘못을 사과하며 환불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돈이 문제가 되는 일이 아니었다. 대구를 모르는 관광객이 오면 자세하게 안내를 주는 것이 서비스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자세가 아니냐며, 그리고 자초지정도 제대로 모르고 둘러대는 사고 방식을 고쳐주었으면 한다고 말씀은 드렸지만 딱한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아마 보통 사람들 같으면 안되니까 속았다 셈치고 넘어가는 수도 있겠지만 관광 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자세가 조금이라도 개선 되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램이였다.
울산에서 국도를 따리 정자로 가는 길은 계속 오르막 길이였으며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3 동안 우리에게 그렇게 험한 길을 주시다니..
정자에서 갑포로 가는 길에 문무왕수증왕릉도 보고 감은 사지에 들려 할머니들이 그늘에 앉으셔서 손수 솔잎을 고르시며 판매하는 감이랑 솔잎, 뽕잎차도 맛보고, 또한 바닷가에는 갈매기 떼들이 파란하늘과 어우러진 너무나 아름다운 그림이 형성되는 듯하여 자전거 타는 것이 더욱 신이 나고 즐거웠다 구룡포는 오징어 잡이가 흥행한 탓에 관광객이 많아서인지 사람들의 인심이 좋지 않은 했다. 숙박시설이며, 마음 같아선 포항으로 떠나고 싶었지만 너무 늦은 시간이고 하여 울며 겨자 먹기로 하루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구룡포를 떠나 포항으로 오는 길은 너무나 공사가 많고 트럭들은 무슨 심보인지 아주 빨리 달리고 버스들도 질주를 하며 온통 공사장의 먼지를 우리한테 퍼부었다. 도로사정이 좋지 않을수록 대형차들이 도로에서 조용히 천천히 달려야 하는데 오히려 도로의 왕인 질주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포항에서 칠포 구간도 급경사 구간이 많긴 했지만 다행히도 차량이 많지 않아서 바다를 보며 그러면서 달릴 있었다. 다른 어느 곳보다도 낚시꾼들이 많이 눈에 뜨였다. 칠포와 월포 사이에는 아주 조용하게 위치한 숙박 시설과 레스토랑 ,커피숍이 더러 있었다. 우리도 아주 친절한 분들을 만나 며칠 전까지의 불만족인 상황을 재개할 있었으며 영해를 향해 떠났다. 강구에 들려 망향정도 보고 영덕 게도 맛보고 하는데 갑자기 먹구름이 오고 비가 내리쳐서 강구에서 하룻밤을 머물려고 알아보니 불친절과 비용은 한마디로 바가지였다 이상하다. 매스컴을 곳이라면 그곳 사람들의 인심이 변하고 관광객에게 바가지를 뒤집어씌우는지....
영해에서 울진 까지는 정말로 아름답고 한적하게 자전거를 있는 곳이었다. 특히 기성-울진 사이는 해안도로 타기라 아주 좋았고 겨울 준비를 하는 어부들의 모습이 왠지 쓸쓸하게 보이긴 했지만 널려놓은 오징어의 모습과 냄새는 잊지 추억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인생에 있어서 굴곡이 있듯이 며칠 편하게 지냈다고 울진 -장호 구간은 가파른 경사 길에 너무나 힘들었다. 임원에서 장호가지는 정말로 최악으로 힘들었다. 장호에 도착. 인심은 하늘을 찌를 나빴고 이제 여행이 끝나가려나보다 싶었다. 항상 다른 나라에서도 마무리를 지을 단계에 와서는 도망치듯이 가야 되었으니까 말이다. 이제 이틀만 지나면 우리의 여정이 막을 내리게 된다. 고향인 동해안이고 자주 곳이라서 낯설지도 않았고 급하게 경사도 이제 우리의 최종 목적지에 드디어 도착하게 된다 생각하니 힘들게는 느껴지지 않았다. 정동진이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는 곳이고 주말이라 숙박료가 비싸리라고 생각은 했지만 너무나 터무니가 없었다. 우리는 좋게 여행을 좋아하시는 분을 만나게 되어 처음으로 공짜로 잠을 있게는 되었지만 관광지에서 숙박이니 기타 다른 것들에 대한 규정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생각되었다. 마지막 여행을 마치는 정동진의 밤은 시끄럽고 왠지 마음이 뭉클 옴을 느꼈다. 여행을 하면서 배운 것도 많고 힘들고 기쁠 때도 많았고 아마 그와 단둘이 집에 도착했더라면 승자의 눈물이랄까? 흘렀을 텐데 집안 식구들과 강릉TV팀과 많은 사람들 탓에 여행이 끝났는지 실감이 나질 않았다.
지금은 모두 잠든 . 드디어 여행이 끝났다. 도전으로 했던 , 나와의 싸움에 성공했다.
<div align='center'><img src='image/Tour01_025.jpg' alt='Tour01_025'></div>
한국에서의 자전거 투어

자세한 여행기는 고목나무와 개미의 자전거 여행 박우사